목이오빠 2

2020. 3. 17. 07:13게으른 기록/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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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주적인 자기소개이후 그 자기소개에 반해버린 한 학급친구가 무서운 윤리선생님에게 ‘목이오빠’라는 사랑스런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우리반에서는 학생주임 선생님을 ‘학주’ 보다는 ‘목이오빠’로 더 자주 불렀다. 물론 당사자는 본인이 그렇게 불리는줄은 꿈에도 모르신다. 딸뻘되는 여자아이들이 선생님을 오빠라고 부른다고 상상이나 하시겠는가.

그런데 그 날은 꽤 빨리 왔다.

고3의 숙명, 야간 자율학습. 어김없이 정규 수업이 끝나고 야간 자율학습시간이되면 각 층은 그날 담당선생님들이 당번을 정해 각층을 돌으신다. 고3 이녀석들이 공부를 하나 안하나 감시하러. 그날도 선생님들이 교무실을 나서서 각층을 돌시간이었다. 건물 중간에 있는 우리 교실은 교실 앞문에서 중앙 계단이 보인다. 거기서 선생님들 정수리가 보이면 냅다 자리에 앉곤 했다. 그날도 교실 앞문에서 중앙 계단을 보고있던 나는 목이오빠의 정수리가 보이자 몸을 틀고 아직도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지만 반 아이들에게 들릴정도로는 크게 말했다.

“야, 목이오빠다, 빨리 앉아.”

부시럭 거리면서 아이들은 자리를 정돈 시켰다. 나는 목이오빠님이 어느쪽으로 가시나 확인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빠르신지 이미 내앞에 서계셨다.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그리곤 질문을 하셨다. 방금 뭐라고 했냐고. 음.... 그당시에는 뭐 둘러댈 말도 없고 한순간 조용해진 애들도 있고해서 나는 그냥 고해 바쳤다.

“아... 목이오빠 오신다고요....”

다만 그 별명을 내 입으로 고해 바칠줄은 몰랐지. 혼날줄 알았는데 학주는 내 대답을 듣곤 ‘가서 공부해’ 하곤 우리 반을 쓱 훝곤 그대로 다음 반으로 가셨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은 제자들의 귀여운 애교로 봐주셔서 그냥 넘어갔고 이후로도 우리는 앞에서는 선생님, 뒤에서는 목이오빠라 부르며 고3의 나날을 보냈다.


다시 생각해봐도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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